“하나님, 진짜 저를 사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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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진짜 저를 사랑하세요?” 본문: 말라기 1:1–6

1)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가?

우리 시대의 문화적 맥락: 이것이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여러분, 우리는 사랑도 자꾸 결과로 확인하려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면 보여줘.” “진짜 아끼면 증명해줘.” 이런 문화 속에 살다 보니까, 하나님을 향해서도 똑같이 묻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왜 내 삶은 이렇게 어렵죠?” “왜 나는 열심히 기도했는데도 그대로죠?” “왜 저 친구는 더 잘되는 것 같은데, 나는 이렇게 답답하죠?”
사실 이 질문은 오늘 우리만 하는 질문이 아닙니다. 말라기 시대 유다 백성도 똑같이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말 1:2)
이 말은 단순한 질문이 아닙니다. “하나님, 솔직히 잘 모르겠는데요?” 이런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들은 예배는 드렸습니다. 성전도 있었고, 신앙의 모양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이 기대만큼 좋아지지 않으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의심되기 시작한 겁니다.
이게 우리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꾸 형편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판단합니다. 잘되면 사랑받는 것 같고, 안 되면 버림받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의 사랑은 그런 식으로만 판단할 수 있는 걸까요?

전환 질문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실까요?

2) 메인 아이디어

성경 본문에 대한 이해 / 하나님의 성품 / 본문과의 연결점

하나님은 백성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은 사랑하였고” (말 1:2) . *사랑했다(완료)
하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증거는 너희 형편이 완벽하다는 데 있지 않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내가 너희를 택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야곱은 훌륭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흠도 많고, 계산적이고,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야곱이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로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9장도 이걸 설명합니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서게 하려 하사” (롬 9:11)
이게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내가 잘해서 받는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베푸시는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또 하나님은 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말 1:6) 하나님은 단순히 제사만 받기 원하신 게 아닙니다. 그분은 백성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주인으로 경외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본문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내가 원하는 걸 다 주는 사랑이 아니라, 나를 택하시고 하나님과 함께 살도록 부르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물건을 주듯 사랑하시는 분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주시며 관계로 부르시는 분입니다. 시편 73편 25절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시 73:25) 진짜 사랑은 “하나님이 뭘 주시나”보다 “하나님 자신이 어떤 분이신가”를 보게 만듭니다.

3) 우리를 막아서는 것은 무엇인가? FCF: 왜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는가? / 우리의 딜레마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잘 못 누릴까요? 왜 자꾸 사랑을 의심할까요?
첫 번째는, 우리는 사랑을 자꾸 거래로 바꾸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은혜를 말하지만, 속으로는 계산합니다. “내가 기도했는데 왜 응답이 없지?” “내가 예배드렸는데 왜 상황은 그대로지?” “내가 하나님 믿는데 왜 더 힘들지?” 이렇게 되면 신앙은 관계가 아니라 거래가 됩니다.
두 번째는, 우리는 비교에 너무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말라기 1장 4절에서 하나님은 에돔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을지라도 황폐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나…” (말 1:4) 유다 입장에서는 에돔이 더 잘되는 것처럼 보였을 수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맨날 비교합니다. 친구의 성적, 외모, 집안, 대학, 연애, 취업, SNS 분위기까지 다 비교합니다. 비교가 시작되면 하나님의 사랑은 흐려집니다. 왜냐하면 비교는 늘 “나는 부족하다”는 결론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우리는 하나님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더 원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느니라” (마 6:21)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께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다른 곳에 가 있을 때가 많습니다. 인정, 성공, 안정, 사람의 시선, 미래 보장. 이런 것들이 하나님보다 더 커지면, 하나님의 사랑을 들어도 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진짜 문제는 환경만이 아닙니다. 더 깊은 문제는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이사야 29장 1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사 29:13)
입술은 가까운데 마음은 멀 수 있습니다. 예배는 드리는데 하나님은 원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게 우리의 딜레마입니다.

4) 예수님은 어떻게 성경 주제를 완성하고, 이 핵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시는가?

CFC / 십자가를 드러냄

그래서 우리에게 복음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을 완전히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공경하고 주인으로 경외해야 하는데, 우리는 자꾸 실패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지 못한 것을 완전히 이루셨습니다. 말라기 1장 6절은 “아들이 아버지를 공경한다”고 말합니다.
“아들은 그 아버지를… 공경하나니” (말 1:6) 우리는 그런 아들이 되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참된 아들로 오셔서 아버지께 끝까지 순종하셨습니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요 8:29)
예수님은 우리가 실패한 자리에서 완전한 순종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우리가 받아야 할 버림을 대신 지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 27:46)
왜 예수님이 이런 버림을 당하셨습니까?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을 대신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5장 8절은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은 어디에서 가장 선명하게 보입니까? 내 인생이 잘 풀릴 때만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가장 분명하게 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어떻게 저를 사랑하셨나요?”라고 물을 때, 하나님은 십자가를 가리키십니다. “이렇게.” “내 아들을 너를 위해 내어줄 만큼.” “네가 아직 죄인일 때도 포기하지 않을 만큼.”
요한일서 4장 10절도 말합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요일 4:10) 복음은 내가 하나님께 사랑받을 자격을 증명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사랑을 증명하신 이야기입니다.

5) 적용 /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첫째, 형편보다 십자가로 하나님의 사랑을 해석해야 합니다. 힘들 때, 답답할 때, 마음이 무너질 때 “하나님이 날 사랑하시나?”를 감정으로만 판단하지 마세요. 십자가를 보세요.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 (갈 2:20) 우리는 내 컨디션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로 사랑을 확인해야 합니다.
둘째, 예배를 습관이 아니라 관계로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말 1:6). 예배의 핵심은 참석 체크가 아니라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정말 아버지로, 주인으로 모시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셋째, 비교보다 부르심 위에 서야 합니다. 세상은 계속 비교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비교보다 먼저 “내가 너와 함께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라” (사 41:10)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이, 남보다 앞서는 것보다 더 큰 힘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것보다 하나님 자신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신앙은 결국 여기서 갈립니다. 하나님을 이용하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으로 가야 합니다.

결론 여러분, 말라기 1장은 아주 솔직한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말 1:2)

사실 이건 우리 질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진짜 저를 사랑하세요?” 그 질문에 하나님은 오늘도 대답하십니다. “내가 너를 택했다.” “내가 너를 버리지 않았다.” “내 아들을 너를 위해 내어주었다.” 그러니까 이제는 상황만 보고 하나님의 사랑을 판단하지 맙시다. 십자가를 봅시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시다.
“하나님, 저는 자주 사랑을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십자가를 보며 다시 믿겠습니다. 주님은 저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끝까지 저를 붙드실 것입니다.” 그래서 무궁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약속하시는 주님을 높여 드립니다. 열방의 주인이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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